마을의 전설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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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현리(大峴里)

  • 원래 와룡면 서현2리에 속하였으나 1987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북후면 대현리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은 한골, 옷밭골, 널바우, 거인 4개이다.

도진리(道津里)

  • 도진리는 도나리, 새터, 마사, 오금, 금상계 등 5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지명은 마을 앞에 내가 흐른다고 해서 도나리, 도진이라 불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에 오금, 신기, 하마사리를 병합하였다. 1996년 통계에 의한 세대수는 본동인 도나리에 62세대, 마사에 36세대, 새터에 10세대, 오금에 6세대, 금상계에 3세대로 전체 117세대였으나 2001년의 경우에는 전체 107세대에 284명으로 계속하여 줄어드는 추세이다.

도촌리(道村里)

  • 도촌은 학가산과 더불어 안동의 진산(鎭山)인 천등산 동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천등산의 연봉인 대곡산(大谷山)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이 나지막이 휘어 두른 구릉에 기대어 섰으며 마을 앞 반월산(半月山)을 안산(案山)으로 하고 있다. 마을 뒤로는 수려한 봉우리와 천석(泉石) 좋은 계곡이 있고 앞에는 천등산의 여러 골짜기에서 흐르는 실개천이 어울려 마을 앞으로 굽이치는 도계천이 흘러 전형적인 배산임수한 지형에 남향으로 터잡아 마을이 전체적으로 밝고 포근하다. 영가지에는 도기촌(道岐村)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도기촌은 부에서 북쪽으로 30리 떨어져 있다. 좌랑 정약(鄭若)의 별서(別墅)가 있다. 생원 권사빈(權士彬)이 와서 살았다. 그의 둘째 아들 벌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맏아들 의 눌러 살았다.”고 적고 있다. 도촌리는 1리와 2리로 행정구역이 분리되어 있다. 1리는 도계촌과 모살미, 2리는 서당골, 부루골, 옥산골, 장골 등 4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되어 있으며 세대수와 인구는 1리에 59세대에 184명 2리에 72세대에 441명으로 전체 131세대에 625명의 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산리(斗山里)

  • 두산리는 북후면 소재지인 옹천리에서 서쪽으로 난 지방도를 따라 2km 정도 거리에 있다. 두산리를 에워싸고 있는 금학산, 불로봉, 갈미봉, 학가산, 옥산, 천등산 등의 높은 산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두메 또는 두산이라 부른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하곡, 굴암, 마점을 병합하여 두산리라 이름하였다. 지명은 조선시대 중엽인 1610년 김동암(金東岩)이란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이 지역의 생김새가 말을 엎어놓은 모양과 같다하여 말산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두산동이라 하였다.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이 마을 저 마을을 오가며 등짐장수를 하는 총각이 이 마을에서 죽게되자 마을 사람들이 애통하게 생각하여 장례를 치러주고 묘를 썼다고 한다. 이때 장사 지내기 위해 총각이 지니고 있는 물건을 살펴 보았더니 그 당시의 가격으로 한우 5두를 살 수 있는 큰돈을 지니고 있어서 1두 값으로는 장례비용으로 쓰고 나머지 돈은 계를 조직하여 운영하면서 외롭게 죽은 총각의 제사를 지내주었으며 정월 보름에는 마을별로 윷놀이를 하여 이기는 마을에 송아지 1마리씩 주는 것이 전래되다가 폐지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총각의 무덤이 마을에 전한다. 두산리는 음지마, 상양지, 하양지, 굴암, 마점 등 5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세대수는 109세대이며 인구는 286명이다.

물한리(勿閑里)

  •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연곡리와 도진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물한리라 하였다. 면소재지인 옹천(瓮泉)에서 남쪽으로 4㎞ 떨어진 곳으로 약 370년 전 강세명(姜世命)이라는 선비 일가가 처음 이 곳에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마을의 이름을 물이 많다고 해서 무란기로 부르다가 후에 마을에서 나는 물이 너무 차다고 하여 한천(寒泉)이라 불렀다. 물한리는 본마, 작산, 아랫마, 덕거리 등 4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세대는 89세대에 237명의 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주 강씨(姜氏)가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성마을이다.

석탑리(石塔里)

  • 북후면 소재지인 옹천리에서 왼편으로 뻗어있는 지방도는 영주시 장수면 조제리로 향하는 길이다. 이 길은 북후면 두산리, 월전리, 신전리, 석탑리를 이어주며 갈미봉(葛美峰)과 조운산(鳥雲山), 학가산(鶴駕山)을 휘감아 돌아 자연경관 또한 빼어난 곳이다. 석탑리는 옹천리에서 지방도를 따라 10km 되는 거리에 위치하며 북후면에서는 가장 많은 숫자인 7개(감나무골, 새터, 청골, 구억들, 압령골, 개랄, 구둠실)의 자연마을을 가지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추곡리와 신전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영주시 문수면 조제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석탑리를 이루었다. 석탑리라는 지명은 석탑사 앞에 자연석을 가지고 쌓아올린 탑이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석탑사는 학가산의 북쪽 자락인 연화봉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이 사찰 주위는 연꽃과 같이 생긴 봉우리가 절을 감싸고 있고 연꽃의 중심부인 연밥자리에 석탑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연꽃은 원래 물 속에서 꽃을 피우고 물의 영양분을 받아서 성장하므로 석탑사의 풍수조건은 이러한 연꽃의 생장조건을 잘 갖춘 곳에 세웠다고 전한다. 석탑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연석으로 축조된 석탑이 웅장한 규모로 자리잡고 있는데 언제 누구에 의하여 축조하였는지는 기록이 전하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능인대덕과 관련된 전설만 전하고 있다.

신전리(薪田里)

  • 신전리는 동쪽으로 조운산(634m)이 가로막고 남쪽에는 학가산(882m)이 버티고 있으며 북으로 갈미봉(548m)이 솟아있어 산 속에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다. 전체적으로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어서 행정구역상 1리와 2리로 나누어진다. 1리는 새마, 구신전, 마구실, 운곡이라 부르는 4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89세대에 229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2리는 북절골 1개 마을에 28세대 6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에 따라 동음리를 병합하여 신전리라 하였다. 마을 이름은 주위에 참나무 숲이 많이 우거져 있다고 하여 섶나무 신(薪) 자를 써서 신전이라 불렀다.

연곡리(蓮谷里)

  • 연곡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물한리와 마사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1리와 2리로 나누어져 있다. 자연마을은 1리에 늪실, 종실, 매일, 아래골 등 4개의 마을로 형성되었으며 2리에도 용수골, 텃골, 웃마사, 아랫마사 등 4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세대수는 153세대에 42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오산리(梧山里)

  • 북후면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오산리는 소부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동에서 영주로 가는 5번 국도를 따라 제비원미륵불을 지나 1.5km 북쪽으로 올라가면 안동영명학교에 닿는다. 5번 국도에서 영명학교 옆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을 따라 들어서면 오산리이다. 오산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 오치는 영명학교에서 500m 정도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오산리는 6개(오치, 잣밭골, 통골, 대추나무골, 보내, 맥현)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세대수는 89세대이고 주민은 264명이다.

옹천리(瓮泉里)

  • 옹천리는 조선시대 때부터 교통의 중심지로써 안기도 찰방이 관할하는 옹천역이 이곳에 있었다. 현재에도 북후면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면소재지이다. 안동에서 5번 국도를 따라 옹천리까지는 약 16km이다. 이 마을은 북서쪽으로 병풍같이 두른 높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서 마치 단지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옹전(瓮田)이라 불렀다. 그후 마을을 가로지르는 옥계천이 맑고 깨끗하여 옥천(玉川)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또는 마을에 물맛이 좋기로 이름난 샘이 있어 옹기 옹(瓮) 자에 샘 천(泉) 자를 써서 옹천이라 이름하였다. 1914년 북선면의 거인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에는 행정구역으로 옹천리를 1?2?3리로 분리하여 약 500여 호가 거주하는 대촌이다. 주민을 이루는 성씨는 진주 강씨(姜氏)가 가장 많은 동성마을을 이루고 있다. 자연마을의 수는 전체 14개이다. 1리의 자연마을은 본마, 감상골, 굴로골, 밤실, 새마, 토골의 6개이며, 2리에 본마, 원구렁 2개이고, 3리에는 본마와 시장, 한지골, 오누골, 개평, 관사 등 6개이다.

월전리(月田里)

  • 월전리는 고지대에 분지를 이루고 있다. 동산마가 위치한 곳에 반월처럼 생긴 동산이 있으며 그 동산을 중심으로 반월처럼 생긴 계단식 밭을 경작한다고 해서 달밭이라 부르게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추곡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월전리라 하였다. 자연마을은 큰마, 쑥모테, 고지절, 납두루, 동산마 등 5개이며 세대수는 119세대에 313명의 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기리(場基里)

  • 장기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옹천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명은 장이 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나 지금은 장이 열리지 않는다. 세대수는 78세대에 190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방탄현 적석탑 (1997년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343호로 지정)

    • 방탄현 적석탑
    • 주소 : 경북 안동시 북후면 석탑리 861번지 석탑사(石塔寺)에 있는 석탑
      학가산 석탑사(鶴駕山 石塔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로, 신라 신문왕 1년(681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절 이름은 바로 곁에 있는 피라미드 형태의 학가산 석탑에서 유래하였음으로 미루어 적석탑이 이곳에 예로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정확한 축조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초기로 추정되며, 평면은 정사각형을 이루고, 위로 올라가면서 계단식으로 축조되어진 독특한 형태의 다층탑이다. 석재는 주변에서 채취가 가능한 편마암의 크고 작은 파편을 사용하였다.

      각 층마다 비교적 크고 반듯한 판돌 4장으로 바깥쪽 면을 쌓고, 내부는 막돌로 채워넣는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원래의 형태를 알 수 없기에 탑의 전체적인 규모는 파악할 수 없으며, 최상부는 최근에 보수한 것으로 보이고, 현재 모습은 5단이나 그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방단형 적석탑은 한국의 석탑양식 중 많지 않은 유형으로서, 석탑의 여러 형태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으며, 가까운 의성지역의 안평면 방단형 적석탑과는 유사한 모양이다. 고구려식 무덤과 비슷하여 장수왕때 고구려 사람들이 쌓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또, 멀리 산청의 전 구형왕릉, 울산 은현리 적석총, 서울 석촌동 3,4호분과 같은 네모꼴 기단 위에 돌을 쌓아올린 돌무덤과도 유사한 점이 없지 않다.

      이 석탑에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영주 부석사 승려들은 능인(能仁)이 신통술을 부려 자신들의 공양미를 훔쳐간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승려 3천 명이 능인을 죽이려고, 각자 손에 돌 하나씩을 들고서 이백리나 떨어져 있는 이곳으로 몰려왔다. 하지만 이를 미리 알아챈 능인이 꾸짖자 부석사 승려들은 들고온 돌을 한쪽에 모아서 탑을 쌓았다고 한다.

      다른 전설은 명인도사(明認道士)와 마고선녀(麻姑仙女)의 이야기이다. 두 사람은 바위로 만든 집에 살면서, 돌로 만든 신을 신고, 돌로 만든 말을 타고 다녔다. 또 신통력으로 소백산을 왕래하면서 돌밥을 날라다 먹었는데, 이 탑의 돌은 그들이 남긴 흔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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