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전설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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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동

  • 명륜동은 1964년 법정동인 명륜동과 신안동이 통합하여 행정동명으로 명륜동이 되었다가, 1997년 행정동인 명륜동과 안막동(법정동인 안막동과 상아동 일부)이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음과 법정동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지난날 향교가 있던 동리라 하여 향교골이라 불렀다. 생긋골이란 별칭도 있다. 1931. 4. 1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안막동 일부를 갈라서 이곳의 향교 명륜당 이름을 따 향교골 즉 명륜동 일정목이라 하다가 1947년 위식 동명변경에 의하여 명륜동으로 고치고 1964. 3. 21 통합 개편에 의하여 신안동을 합하여 명륜동이라 하였다. 이 향교터는 안동의 교육기관 거의가 이 자리에 문을 열었다. 안동사범·안동교육대학·안동대학교 등의 옛터이다. 1991년 안동시청이 이 자리에 청사를 지었다. 뒷산에는 동관사의 건물이 나와서 등골배기라 이름이 부쳐졌다. 옛날 향교에 있던 돌사자는 지금 안동대학교로 옮겨졌다.

신안동

  • 안동부의 동북부에 있어 안막동의 일부였으나 1931. 4. 1 읍제 실시에 의해서 명륜동 이정목이 되었다가 1947년 위식 동명변경에 의해서 안막동에서 나와 독립되었다는 뜻으로 신안동으로 명명되었 다 옛날에 딱나무 밭이 있었다는 마을은 지금도 딱밭골으로 불려진다. 이 동리의 남쪽 시내를 건너 옛날에 배나무가 많았다는 배나무골 또는 배남골이 있고 딱밭골 북쪽 골짜기의 마을은 칫골이라고 하며 모양이 꿩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치(雉)골로도 불린다. 칫골 맞은편에는 옛날에 1.3m 높이의 부처가 있어 부처바우 또는 불암곡으로 불리나 그 부처는 안동대학교로 옮겨졌다. 이 동리의 남쪽 첫머리를 쑥머리로 부르고 있으며 이곳에 놋그릇 공장이 있어 종도 만들어서 인정골로도 불린다.

안막동

  • 옛날에 순흥 안씨의 효자가 시묘하던 막사가 있었다고 하여 안막동이 되었다는 내력과 그보다 더 먼 옛날 고려 태조가 견훤의 군사를 물리칠 때 안순이 할멈의 주막이 있던 마을이라 해서 안막동으로 불린다는 설도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떄 안막골. 지금의 신안동·명륜동과 머질이를 합하여 안막동이 되었다. 1931년 안동읍제 실시로 안막정·명륜정 일정목·명륜정 이정목으로 하였다가 1947년 위식동명 변경에 따라 명륜동 일정목은 명륜동 이정목은 신안동, 안막동은 따로이 독립하여 일부는 상아동으로 독립되었다. 1983년 와룡면 서지동의 일부와 중가구리의 일부·산야동의 일부가 안동시에 편입되면서 안막동으로 들어왔다. 상아동은 재분하여 법정동으로 그대로 두면서 안막동과 신흥동의 행정동사무소가 관할하게 되었다. 안동시가에서 예안가는 길, 퇴계로를 따라가면 가파른 오르막 길의 왼편에 안막동사무소가 있다. 돌에 새겨진 정백마을에 들어가는 길목에 동회가 있는 마을은 새동내라 하고 조금 더 올라가면 넓다란 곳에 박정희 대통령 글씨의 퇴계로 비석이 있다. 그곳으로 더 올라가면 정미소가 있고 외평골이 보이고 서지역과 중앙선 철로가 보인다. 동회에서 시가지 쪽으로 내려오면 세명당·녹안골·머질·한머질 마을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시가쪽으로 향하면 양편에 고층아파트가 솟아 있다. 옛날의 얼근바위 마을을 지나면 범석골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서편에 있다. 범석골은 범씨의 마을이라 하는 설과 호랑이 우는 골·호수곡에서 붙여진 마을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동사에서 조금 산기슭의 길을 가면 먼댕이 마을 화장터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 청머리 고개를 넘어 안동전력소 가는 길로 가면 상아동의 본 마을이고 득심골 긴모래의 높은 철교가 보이며 문수사, 월봉사가 있으며 안동댐의 보조댐에 이른다. 서지역을 돌아가면 서지교회·신기마을 성낭골이 있다.

상아동

  • 영남산의 동북쪽 일대 기슭에 펼쳐진 마을과 들이다. 그 지형이 상아처럼 되었다고 붙여진 지명이다. 그 동쪽은 안동댐의 보조댐과 본댐에 접하고 있다. 안동댐이 이룩되기 전에는 모래톱이 길고 넓직한 들판 같은 강바닥이 펼쳐진 곳이 있어 거기에 높다랗고 긴 철교가 있어서 풍광이 좋아 긴모래 또는 진 모래라 불렀으며 안동읍내의 학생들의 소풍지였다.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안막동에 편입되었다. 1947년 행정구역변경에 의하여 안막동의 일부를 갈라 상아동이 되었다. 1983년 그 낙동강에 접한 일부가 신흥동에 흡수되었다. 진모래의 모래톱은 먼 옛날 후삼국통일의 고창전투 때에 지렁이의 화신이었다는 견훤이 몸을 이 모래판에 숨겼다고 전한다. 와룡면 서지동이 냇물의 상류에서 안동향민의 군사가 소금을 물에 녹여 물리쳤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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