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전설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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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동 구무탕·개변늪·갱변늪

  • 안동시 사장뚝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안흥동의 터로서 넓이가 10마지기 정도가 된다. 모래 천방이 터져서 물이 넘어 늪이 생긴 마을이라 하여 구무탕 또는 개변늪 갱변늪이라고 하였다. 안흥동의 유일한 자연마을이다.

대석동

  • 법석골거리·대석동(大石洞) 이 마을은 현재 안동여고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법상사가 있었던 골짜기 입구의 마을이라는 뜻에서 법석골거리라 하였다고 한다. 이 마을은 원래 법상동(法尙洞)에 포함되어 있었다. 1931년 4월 1일 안동읍제 실시에 의하여 법상동을 5정목을 나누었는데, 그 중 2정목에 해당되는 구역이 1947년 일본식 동명 변경에 의하여 지금의 대석동이 되었다. 대석동이라는 명칭은 마을 안에 지름이 3m 정도 되는 반석(盤石)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옥거리·옥리(獄里·玉里)

  • 이 마을에 안동부의 옥(獄)이 있었다고 하여 옥거리 또는 옥리라 하였다고 한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옥동(玉洞)에 편입되고 1931년 4월 1일 안동읍제(安東邑制) 실시에 의하여 옥동 일부를 잘라서 팔광정 4정목(町目)이 되었다가 1947년 옥야동에 편입되었다. 옥야동의 원마을이다.

광석(廣石)

  • 마을 안에 넓은 돌이 있었다 하여 너븐돌 또는 광석이라 하였다. 1895년 지방관제(地方官制) 실시에 의하여 부내면 옥리(玉里)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법상정(法尙町) 4정목(町目)이 되었다가 1947년 광석동으로 변경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이 마을이 광석동의 원마을이다.

당북(堂北)

  • 안동부의 옥이 있었던 안마을이라 하여 옥안마라 불렀다고 한다. 1947년 일본식 동명 변경에 의해 당북동이라고 하였다. 법룡사(法龍寺)의 법당(法堂) 뒤에 당집이 있었는데 그 북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당북동의 원마을로 법정동의 명칭도 여기서 따 온 것이다.

법석골·법석곡(法石谷)

  • 법석골은 안동부 서부지역으로서 통일 신라 시대에 법상사(法尙寺)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1931년 4월 1일 안동읍제(安東邑制) 실시에 의하여 5구역 즉, 법상정(法尙町) 1·2·3·4·5정목으로 구분되었다가 1947년 일본식 동명 변경에 따라 1·2·4·5정목은 각각 화성·대석·광석·금곡동으로 갈라져 나가고 3정목이 법상동으로 되었다. 그 후 1964년 3월 14일 동기구(洞機構) 개편에 의하여 금곡동을 합하여 법상동이라 하였다. 현재는 안동여중과 안동여고가 마을 뒷산에 있으며 마을 가운데에는 금남로라는 도로가 나 있어 평화동, 태화동에서 안막동, 명륜동으로 쉽게 갈 수 있다.

금곡(金谷)·금시동(金是洞)

  • 이 마을은 본래 안동부의 서부지역으로서 세실 또는 왕곡, 금시동이라 하였다. 그러다가 고종 22년(1885)에 권영준(權寧準) 선생이 금곡서당(金谷書堂)을 짓고 후진을 양성한데서 금곡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법상동에 편입되고 1931년 읍제(邑制) 실시에 의하여 법상정 5정목으로 되었다가 1947년 일본식 동명 변경에 따라 금곡동으로 고쳤다.

꼬재·잿골·성지동(城池洞)

  • 이 마을을 옛날에는 꼬재라 부르다가 당시 산중턱에 집이 2채 있어서 사람이 법상동에서 재를 넘고 다녔다 하여 잿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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